이서진 인생 이야기
탤런트 이서진에 대한 루머와 잘못 전달된 사실이 무척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친일파, 독립유공자 논란이죠.
과연 이서진 집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한번 살펴봅니다.
이서진 사진
탤런트 겸 영화배우 이서진은 1971년 1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이서진 고향). 올해 45살이죠(이서진 나이).
(이서진 키 몸무게) 178cm, 68kg
(이서진 학력 학벌) 서울 계성초등학교 졸업, 미국 뉴욕 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이서진 프로필 및 경력) 1999년 SBS 드라마 '파도위의 집'으로 데뷔
이후 드라마 그 여자네 집, 뉴논스톱, 별을 쏘다 등에서 차츰 큰 배역을 맡다가 다모와 불새로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그리고 드라마 연인, 이산, 온에어, 참 좋은 시절 등과 영화 무영검, 프리즈, 오늘의 연애에서 좋은 모습을 보입니다.
이서진이 가끔 예능에도 나오는데, 런닝맨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네요(이서진 런닝맨).
# 목차
* 이서진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인가?
* 석주 이상룡 선생의 가계도
* 이서진은 친일파의 후손인가?
* 이서진과 이상룡 선생 집안의 관계는?
* 이서진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인가?
얼마전에 TV조선에서 이서진의 집안에 대하여 방송한 적이 있습니다.
홍여진(TV조선 패널): "이서진 아버지는 A금융금고의 대표였던 고 이재응씨로, 이서진이 연예계 로열패밀리의 1세대로 손꼽힌다고 말할 수 있다."
김갑수(문화평론가 겸 TV조선 패널): "이서진의 할아버지는 금융계의 큰 영향력을 故 이보형이다. 대기업이 형성되기 전인 1960년대에는 은행이 경제를 쥐고 흔든 시기였다. 그 당시 이서진의 할아버지가 서울, 제일은행장을 역임했는데 현재로 따지자면 대기업 총수의 영향력을 가진 위치였다."
TV조선 패널들의 말처럼, 이서진 집안은 금융계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 초창기때에 은행은 굉장히 큰 힘을 가지고 있었죠.
TV조선 패널들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고대규(연예부 기자 겸 TV조선 패널): "이서진 조부의 선대에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룡이라는 분이 계신다. 안동에 생가가 있는데 99칸짜리 기와집으로 보물로 지정돼있다. 이상룡은 일제강점기 1911년 당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분노에 집을 팔아 만주에 가서 독립운동을 했다고 한다."
윤문식(배우 겸 TV조선 패널): "이상룡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역임하신 굉장히 훌륭한 분이다. 이서진씨 가문이지만 경상도에 고성 이씨 집안에서 독립 유공자가 아홉 명이나 나왔다는 것은 명문가의 후예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거다."
박종진(TV조선 MC): "애국청년을 육성하는데 주력했던 기관인 부민단을 주도한 분이 이상룡이다. 뿐만 아니라 집안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해 역사에 이름을 높이 올린 분이다."
이렇게 방송은 이서진이 석주 이상룡 선생의 (직계) 후손인양 묘사합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요?
* 석주 이상룡 선생의 가계도
석주 이상룡 선생(1858년 음력 11월 24일 ~ 1932년 6월 15일)은 안동 명문가의 종손으로서 큰 재산을 가진 거부였습니다.
선생이 살던 임청각은 99칸짜리 집(사대부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저택)으로 유명하며, 후에 보물 182호로 지정된 고택입니다.
나라가 망하자 선생은 이회영, 허위 등의 다른 독립운동가들처럼 전재산을 팔고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게 됩니다(1911년 국권 침탈 이후 바로 떠남).
선생은 초대 국무령(제 3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반)을 지내기도 하지만, 1932년 만주에서 병사하고 맙니다(향년 75세).
이상룡 유언: "조선 땅이 해방되기 전에는 (내 유해를) 데려갈 생각을 마라. 조선이 독립되면 내 유골을 유지에 싸서 조상 발치에 묻어 달라. 외세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더욱 힘써 목적(우리나라의 독립)을 관철하라."
유언에는 죽은 후에도 일제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선생의 기상이 잘 드러납니다.
이상룡 선생 사진
선생은 아들 이준형을 남겼는데(외아들임), 이준형은 아버지를 따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나중에 국내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자 일제는 명망 높은 이준형에게 지속적으로 회유를 했고, 결국 이준형 선생은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게 됩니다.
이준형 유언: "일제 하에 사는 것은 수치일 뿐이다."
이준형의 아들(이상룡의 손자) 이병화는 끝까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서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남로당원으로 활동하다가 전쟁중에 병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상룡 선생의 증손자는 한때 고아원에 맡겨지는 등의 곤궁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상룡 선생 가계도
이상룡 - 이준형(외아들) - 이병화(손자) - 증손자(한때 고아원을 전전함)
해방 이후에 선생의 후손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이 한때 임청각(선생의 생가)를 다시 구입했지만, 결국 관리할 여력이 없어서 2002년 국가에 헌납하게 됩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임청각은 보물 182호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역사적인 유적임)
(선생의 후손들의 삶에 대해서는 밑에서 추가 언급)
* 이서진은 친일파의 후손인가?
따라서 이서진은 이상룡 선생의 직계 후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선생은 외아들만을 남겼고, 그 후손들 역시 곤궁한 삶을 피할 수 없었죠.
반면에 이서진 집안은 부유했고, 이서진 할아버지 이보형은 금융계의 큰손이었으며, 이서진이 중학교때부터 미국으로 유학가서 공부할 정도의 재력이 되었죠.
그런데 이서진 할아버지가 제일은행의 은행장을 지냈다는 이유로 그가 친일파라는 루머가 있습니다.
사실 제일은행은 친일파들이 앞장서서 만든 은행이 맞습니다.
1929년 7월 조선저축은행으로 창설되었고, 1958년에 제일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죠.
하지만 이보형이 은행장을 한 것은 해방 후인 1960년대로, 일제 치하가 아니었습니다.
이서진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어불성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는 SC 제일은행으로 변경됨)
다만 이보형이 1960년대에 은행장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이전에 관련 업계에서 실력과 명망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보형의 광복 이전의 행적은 아직 자세히 드러나지 않았네요.
따라서 이서진이 친일파의 후예인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 이서진과 이상룡 선생 집안의 관계는?
그렇다면 이서진의 집안과 이상룡 선생 후손들은 친한 사이인가,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1932년 병사한 선생의 유해는 만주에 묻히게 됩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 선생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왔지만, 선생은 오랫동안 무국적자로 남게 됩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던 것이죠.
그 이유는 일제가 1912년 호적제도를 도입했고, 광복 후 우리나라 정부는 일제의 호적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따라서 만주에서 사망한 선생은 무국적자가 된 것이죠.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전재산을 팔아 만주에서 목숨건 독립투쟁을 하던 선생이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네요.
(그동안 후손들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그곳의 수반(오늘날의 대통령)은 국외자로 취급을 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이후 선생의 후손들이 노력해서 ‘독립유공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드는 것 등)을 통과시키면서, 2009년에야 비로서 선생은 '국적'을 가지게 됩니다.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활동한지 90여년 만에, 후손들의 나라에 국적을 가지게 되었죠.
그런데 법률이 통과된 후에, 선생의 후손들은 약 5백만원의 비용(뒤처리를 개인에게 맡겼기에 변호사 비용 등의 제반 비용)을 가까스로 마련합니다.
선생의 후손들은 이서진 집안에게 결코 손을 내밀지 않은 것으로 봐서, 두 집안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상 살펴본 것처럼, 이서진은 이상룡 선생의 친척은 맞지만(방계), 결코 직계는 아닙니다. 따라서 TV조선과 같은 방송에서 '(직계 뉘앙스를 풍기는) 후손' 운운은 삼가했으면 하네요.
(참고로 당시 TV조선의 패널들이 작가들이 써준 원고를 그대로 읽었는지, 아니면 평소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생각 얕음'을 그대로 드러난 것 같습니다.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에 대하여 조금마한 관심이라도 있었다면, 단순히 '이서진 = 이상룡'이라는 식으로 발언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방송을 날로하는 전형적인 케이스가 아닌가 합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언급했던 '임청각'을 관리하기 힘들어 국가에 헌납했던 점이나, 5백만원을 힘들게 마련한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선생의 후손들은 오늘날에도 힘들게 삶을 영위하는 것 같습니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부유하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가난한 삶을 산다.'는 통설이 이번에도 맞아 떨어진 것 같습니다.
참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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