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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처럼 나타난 배우가 있습니다.
바로 연극배우 겸 탤런트 서이숙이죠.


벌써 사십대 후반이기에 신인배우라고 할 수 없지만,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것은 불과 3~4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대중을 단숨에 사로잡아버렸네요.

그런 서이숙의 인생 이야기는 개인에 대한 사회의 의무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여배우 서이숙은 1968년 1월 15일 경기도 연천에서 태어났습니다(서이숙 고향). (간혹 1976년 11월 26일(음력 10월 25일)이라고 오기된 경우도 있음)
올해 47살이죠(서이숙 나이)

 

(서이숙 학력 학벌) 중앙대학교 국악과,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과
(서이숙 프로필 및 경력) 1986년 대한민국연극제 신인연기상 수상

이후 오장군의 발톱, 넌센스, 한여름밤의 꿈, 정글이야기, 리어왕, 오이디푸스 등의 수많은 연극 무대에서 활동합니다.

 

그리고 2010년 제중원으로 드라마 데뷔를 했고, 짝패, 신들의 만찬, 네 이웃의 아내, 기황후, 너희들은 포위됐다 등의 드라마와 아름다운 시절, 역린 등의 영화에도 출연합니다.


서이숙은 어릴 적부터 외롭게 자랐습니다.
아버지와 남동생을 일찍 잃었기 때문이죠.
서이숙: "어머니가 남편을 일찍 여의고 하나뿐인 아들(서이숙의 남동생)도 중학생 때 사고로 잃었어요. 그 뒤 가슴속 한 때문에 드라마는 절대 보지 않았어요. 슬픈 내용이 나오면 눈물을 참기 어려워서였죠."

 


서이숙은 고등학교때 배드민턴 선수로 활약을 했고, 졸업 이후에는 경기도 수원에서 사회체육 코치로 사회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수원예술극장에서 연극 '신의 아그네스'를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서이숙: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없었던 경기도 연천 출신의 시골소녀에게 연극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학창시절 연극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콩트를 만들어 발표하고 국극단원(창극단원)을 따라다녔던 것이 바로 그런 끼를 주체하지 못해서였나 봐요."

 

즉, 서이숙은 학창시절에 끼는 있었지만 그 끼가 무엇인지를 몰랐고, 그것이 스무살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죠.
사회 새내기 서이숙은 서슴없이 수원예술극장 단원 모집 공고에 지원합니다.

 

서이숙: "집안이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스스로 알아서 살아내야만 했어요. 당연히 저는 여느 직장들처럼 월급을 주는 줄 알았죠. 월급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골로 다시 돌아가기에는 끔찍했어요.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월급은 못 받았지만 내 몸 하나 투자하면 되는 곳이어서 ‘아, 무대에서 연극하는 게 저런 것이구나’ 하며 기꺼이 버텼죠."

 

서이숙: "낮에는 2편의 아동극, 밤에는 2편의 성인극 무대에 오르고, 짬짬히 포스터를 붙이고 전단을 나눠줘야 하는 고된 일상이었지만 모든 것이 즐거웠어요."

역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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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년을 보낸 서이숙은 1989년 극단 미추에 입단하게 됩니다.
한국 연극계의 본거지답게 쟁쟁한 연극배우들이 수두룩했고, 서이숙은 코러스로 일을 시작합니다.

 

서이숙: "코러스를 하는 것조차도 저는 흥미로웠어요. 주변 사람들이 왜 힘들게 (연극배우로) 남느냐고 했을 때도, 전 힘든 줄을 몰랐거든요. 그냥 어떤 것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으니까요. 아마 다른 것을 경험하지 않아서, 무지에서 오는 행복감 아니었을까도 싶고,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기다린 결과가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다른 여배우들처럼 뭔가를 빨리 이루고 싶어 안달했다면 그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을 겁니다."

 

서이수: "(신인때) 관객들이 나만 쳐다보는 줄 알고, 코러스하면서 한 장면이라도 더 잘 나오려고 애쓰기도 했었죠."

 

사실 이런 착각에 빠지기 때문에 신인들이 무대에서 긴장을 하는 것이죠. 관객들은 주인공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말이죠.
아무튼 서이숙은 코러스라는 작은 배역으로 시작해서 서서히 성장합니다.

 

서이숙: "20대 초보 시절, 주인공이 아닐 때는 막연히 코러스를 열심히 하면 됐어요. 30대 때는 주인공이나 선배들의 연기를 집중해서 보고 따라 배우면 됐지요. 40대쯤 되니, 자기가 맡은 배역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겼어요. 제가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할 위치가 되다보니, 작품 속 인물이나 배경과 관련된 책, 잡지, 자료 등을 탐독하는 것은 기본이 되었어요."

 

 

외모 덕분에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에 갑자기 스타가 된 사람들에게는 이런 내공이 약한 것 같습니다. 서이숙은 거의 이십년동안 연극무대에 서면서 서서히 성장하면서 내공을 닦아왔죠.
그리고 드디어 주인공으로 발탁됩니다.
바로 2003년 허삼관 매혈기에서 허옥란 역을 맡게 된 것이죠.


그이후 서이숙은 오랫동안 준비된 배우답게 연극계의 호평을 받게 됩니다. 다만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하지 않았기에 대중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죠.
그런데 주인공이 된 다음에도 서이숙의 성장은 계속됩니다.

 

서이숙: "발성에 대해 진짜 눈을 뜬 것은 2008년 말 ‘고곤의 선물’ 초연 때였어요. 발성엔 자신이 있다는 생각에 추운 겨울 무리해서 목소리를 끌어올렸다가 공연 초반 목이 쉬어버렸죠. 입소문을 타면서 4백여 석 중극장인 남산 드라마센터의 객석이 꽉찬 상황이어서 더 큰일이 나게 되었죠."

 

서이숙: "궁하면 통한다고 당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목이 아니라 몸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어요. 그래서 공연 전 스트레칭하면서 정신을 집중했더니 막혀 있던 몸통이 열리면서 그 통을 울려 연기하는 법을 절로 터득하게 되더라고요. 그때서야 비로소 ‘온몸으로 연기한다’는 게 뭔지를 깨달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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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숙 사진

 

확실히 최고의 경지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한단계 한단계 더 발전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죠.

 

그렇게 서이숙의 명성은 더욱더 높아졌지만, 2011년 큰 불행이 찾아옵니다. 당시 한국연극인복지재단에서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연극 배우들을 대상으로 종합건강검진을 받게 했고, 서이숙은 44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난생 처음으로 종합건강검진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진단 결과 목에 이상이 발견된 것이죠.

 

서이숙: "처음엔 가슴 아니면 목에 뭔가 좋지 않은 게 보인다며 정밀검진을 받자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는데 결국 암 판정을 받고 말았죠(갑상샘암 판정). 그때 처음 드는 생각이 ‘왜 나야’였어요. 이제 겨우 연기 인생이 제대로 자리 잡아가나 싶은 순간에 왜 하필 내 발목을 잡느냐는 생각에 억울해서 밤잠을 못 이룰 정도였어요."

 


다행히 폐암이나 유방암같은 치명적인 암이 아니라 수술로 치유가 쉽게 되는 암이었습니다. 서이숙이 암투병이랄 것도 없었지만, 서이숙에게는 수술의 성공 여부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갑상샘이 목젖 바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성대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연극배우에게는 치명적인 부위죠.

 

서이숙: "병원에선 수술 직후 목을 쓰는 게 한동안 불편할 거라며 성대에 이상이 왔는지는 6개월이 지난 뒤 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어요. 불안과 초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래도 출연을 약속한 작품에 빠질 수 없어서 아무 일 없었던 듯 ‘대학살의 신’ 대본 연습에 참여했어요."

 

대본연습에서는 무대처럼 몸통을 이용한 발성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서이숙의 이상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하지만 서이숙은 자신 때문에 연극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이 출연하던 연극을 모두 하차하고 맙니다.

 

서이숙 상속자들의 한 장면

 

그리고 연극보다는 발성을 덜 쓰는 드라마와 영화쪽으로 출연하기 시작하죠. 다행히 암 수술을 하기 전인 2010년 영화 베스트셀러와 2010 SBS 제중원, 2011년 MBC의 짝패 등에 출연해서 좋은 연기력을 선보였기에 자리를 잡는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덕분에 대중들은 서이숙이란 배우를 새로 알게 된 것이죠.

 

갑상샘암(갑상선암) 수술 후 최종 검사 결과 서이숙의 성대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매력에 빠진 대중들이 서이숙을 그대로 연극계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 같네요.

 

서이숙: "TV 출연을 하면서 TV 연기가 연극과 또 다른 묘미가 있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어요. 카메라 각도를 고려한 섬세한 표정 연기, 대본에 따라 들쑥날쑥한 캐릭터에 일관성과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TV 연기만의 재미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배우로서 최고는 역시 연극 무대 아닐까 합니다. 소속사에도 이를 분명히 못 박았어요. 일 년에 적어도 한두 편 연극에 출연할 것이고 그 스케줄을 제일 앞세워달라고."

 

역시 서이숙은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네요. 아무리 바빠도 일년에 한두편은 반드시 참가할 서이숙의 연극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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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서이숙은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은 미혼입니다. 연극을 하다보니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죠.

서이숙: "솔직히 젊었을 때는 작품과 배역 외에 신경 쓰는 것이 귀찮았어요. 이제 와서 그나마 연애와 결혼에 관심을 가져볼까 하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빠졌죠."

 

서이숙: "배우들이 그래서 혼자 사는 경우가 많은가 봐요. 독신주의자는 사실 아니에요. 고민도 하고, 친구 같은 남자를 만나 연애도 해보고 싶죠. 아직 연인을 못 만났나 싶기도 해요. 어딘가에서 제 짝도 저처럼 잘 살고 있겠죠?"

남자친구도 없을 정도로 연극에만 푹 빠져서 살아온 서이숙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서이숙은 정말 운이 좋은 배우같습니다.
서이숙이 44살때 종합건강검진을 받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암을 뒤늦게 발견해서 목숨을 잃었거나, 혹은 목소리를 잃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연극배우들이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는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합니다.


지방에 대한 문화 혜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울과 대도시들은 그렇지 않지만, 시골 지역의 아이들은 지금도 이런 문화적인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이숙 역시 수원에서 직장을 잡지 않았다면, 평생동안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살아갔을 것 같네요.

 

지금의 중년과 노년들 상당수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모른체, 단순히 생계에만 매달려 있는 경우가 많죠.
다만 어른들은 이미 그렇게 살아왔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미래 세대들에게는 좀 더 다양한 혜택과 경험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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