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교수 별세 사망 뉴스가 왜 나왔는지,
그리고 김동길 교수 누나 결혼 집안 이야기를 짚어봅니다.
# 목차
* 김동길 어린 시절
* 김동길 교수 누나 김옥길
* 김동길 교수 독재 정권에 항거하다가
* 의연했던 김동길 교수
참고로 한때 김동길 교수 별세 뉴스가 뜨기도 했습니다.
(김동길 사망 뉴스는 루머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음)
그런데 이것은 이 포스팅의 주인공인 김동길 교수가 아니라 동명이인인 '김동길 광성산업개발 회장'의 별세 소식이었습니다.
(동명이인이어서 혼동을 일으킨 것임.)
(참고로 김동길 회장 역시 재계쪽에서는 나름 유명한 인물임)
아무튼 김동길은 현재도 TV조선 등을 비롯한 종편 등에 '보수 패널'로 자주 출연하고 있습니다(김동길 교수 근황 최근 소식).
김동길 교수 사진
사실 김동길 교수 나이가 89살인데, 고령에도 이렇게 정정하게 활동하고 있다니 놀라울 정도네요.(현재 김동길 칼럼도 왕성하게 쓰고 있음)
과연 김동길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그리고 그가 한국사회에서 왜 각광을 받았는지, 또한 현재 그의 사상과 가치관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동길 박사는 1928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납니다(김동길 교수 고향 이북 평남 맹산). 올해 89살이죠(김동길 교수 나이).
(김동길 교수 종교) 기독교(개신교)
(김동길 교수 학력 학벌)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에반스빌대학교 사학과,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학사, 보스턴대학교 대학원 서양학과 박사
(김동길 프로필 및 경력) 1962년 연세대학교 교수 겸 교무처장
1980년 연세대학교 부총장
1991년 조선일보 논설고문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국민당)
1992년 국민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
1994년 신민당 공동대표
1996년 자민련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 김동길 박사 어린 시절
김동길은 어릴 적에 무척 가난했습니다(김동길 교수 집안).
김동길: "아버지는 광산에 미쳐서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어요. 이 광산이라는 게 도박과 비슷해서 집을 팔아도 안 되고 논과 밭을 팔아도 안되는 거예요."
김동길: "결국 모든 걸 잃고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평양으로 나오게 되었죠. 평양에 살면서 이사만 14번 했어요. 당시에는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했으니까."
김동길: "아버지는 그 후에도 소식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우리 형제 자매들을 키우셨죠. 안 하신 일이 없을 정도였어요. 남의 집 삯바느질이나 빨래, 학생들 하숙집 등 온갖 궂은 일을 다 하셨죠."
김동길: "그때 동네요 권번(기생학교)가 있었어요. 당시에 예쁘장한 가난한 집 딸들을 모아놓고 기생되는 법을 가르치는 학교였죠. 우리 동네에서도 어머니에게 딸들을 거기에 보내라고 했는데,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딸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지 어찌 기생이 되게 하겠냐라고 하셨어요."
김동길: "사실 어머니 덕분에 딸(김동길 누이들)들이 이화여대 총장도 하고 문교부 장관도 했죠."
* 김동길 교수 누나 김옥길
참고로 김동길 누나가 바로 김옥길입니다.
이화여대 총장과 문교부장관을 지낸 교육인, 여성 운동가입니다.
김동길 어머니가 지혜롭게 처신했기에, 김옥길을 비롯하여 딸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낸 것 같네요.
김동길: "그동안에도 아버지는 감감무소식이었어요. 어쩌면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도 아버지를 마음 속 깊이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어머니를 너무 고생시키니까 (아버지를) 생각하기도 싫었죠."
(김동길 교수 결혼하지 않은 미혼에 대해서는 밑에서 추가 설명)
참고로 김동길 교수는 결혼을 하지 않은 미혼입니다.
이것은 김동길 교수 친누나 김옥길 역시 마찬가지인데, 아마 둘다 큰 자식들이었기에 어머니의 고생을 직접적으로 보고 느꼈기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참고로 김동길 여동생 3명은 모두 결혼을 했음)
(따라서 김동길 교수 부인(아내) 등이 있다는 것은 루머임. 밑에서 추가 설명)
(김동길 교수 이혼 재혼 배우자 와이프 루머)
* 김동길 교수 독재 정권에 항거하다가
김동길이 처음 이름을 날린 것은 당시 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부에 반대를 하면서부터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면서 15년 형을 선고받은 일입니다.
김동길: "우리는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에요. 그 어떤 형태의 군사 독재 정권에도 대항해서 싸웁니다. 사실 조국이 적화통일 된다던가 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죠."
김동길: "과거에 책 '길을 우리 앞에 있다'때문에 (중앙정보부에) 불려가기는 했는데, 그 책때문에 감옥에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금서가 되니까 책이 더 잘 팔리더라고요."
김동길: "이후에 "유신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에 감옥에 갔어요. 그리고 저를 긴급조치로 거는데, 당시 유신 헌법을 반대하면 최소한 징역 15년은 살아야 하거든요."
김동길: "(징역 15년을 받은 다음에) 나는 분명해서 더 좋았어요. 왜냐하면 어느 골목길을 가다가 몽둥이로 맞아죽는 것 보다는 감옥에 있으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할 것 아니에요."
* 의연했던 김동길 교수
김동길: "그렇게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받으니까, 주변에서 다들 항소하라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나는 이런 자들이 이런 짓 하는 걸 보면 (교도소 밖으로) 나갔다가도 또 들어올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항소를 포기하고 15년을 산다고 했어요."
김동길: "그런데 감옥에서 한 1년쯤 사니까, 나가라고 하대요(당시 형집행정지로 관련자들 모두 석방됨). 그런데 항소한 사람은 항소 서류 때문에 나보다 하루 늦게 나오더라구요."
실제로 장준하가 1975년에 의문사를 당했습니다.
김동길이 사회에서 테러를 당하거나 '의문의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 전혀 근거없는 사실이 아니었죠.
아무튼 김동길은 무척 의연하게 15년 징역을 받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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