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겸 방송인 박경림 아들 사진과 더불어 박경림 남편 학력과 과거 어떤 인연이었는지를 살펴봅니다.
사실 박경림의 성격은 그녀의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무명 시절에 많이 형성되었고, 이런 부분들이 박경림이 결혼한 다음이나 사회 생활에서도 영향을 많이 미쳤죠.
# 목차
* 박경림 어린 시절 이야기
* 박경림이 고백하는 아버지의 과거
* 박경림의 재능 발휘
* 박경림 목소리로 라디오에 발탁된 이유는?
* 박경림의 유학 생활 이유
* 박경림 남편 학력
개그우먼 겸 MC 박경림은 1979년 3월 30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박경림 고향 서울). 올해 37살이죠(박경림 나이)(참고로 박경림 실제 생년월일은 1978년 12월 8일임. 아버지가 출생신고를 늦게 함).
(박경림 키 몸무게 혈액형) 158cm, 51Kg, AB형
(박경림 학력 학벌) 신도초등학교, 예일여자중학교, 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동덕여자대학교 방송연예학과, 숭실대학교대학원 프라이빗뱅킹학과 석사(박경림 고등학교 대학교)
(참고로 미국 뉴욕 필름 아카데미 스쿨(New York Film Academy School of Film & Acting)에서 단기 수료
(박경림 프로필 및 경력) 1998년 KBS 2FM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박경림 데뷔)
이후 강심장, 연예 특종,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 일요일이 좋다 X맨, 해피선데이 여걸 6 등으로 두각을 나타냅니다. 특히 조인성과 함께 러브라인을 그린 논스톱으로 큰 인기를 얻기도 했죠.
박경림 남편 사진
* 박경림 어린 시절 이야기
박경림은 어렸을 때 무척 가난하게 성장합니다.
박우철(박경림 아버지): "내가 원래 경북 김천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살림 밑천 벌어볼 생각으로 해병대에 지원해서 월남전에 파병되었죠."
박우철(박경림 아버지): "월남전에서 68년에 상이 제대를 했어요. 팔은 탄환 관통상을 입었고, 다리에는 파편이 박혔고, 어깨는 백병전을 하다가 대검에 찔렸고요. 팔과 다리를 제대로 못 쓰게 되었어요."
박우철(박경림 아버지): "당시 우리 소대원 36명 중에서, 그나마 살아 돌아온 사람이 예닐곱이었어요. 그러니 제가 (비록 큰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온 것만도 크게 다행이었죠."
박우철(박경림 아버지): "그리고 상이 심사를 해서 40만원을 받았어요. 상당히 큰 돈입니다. 그 돈이면 당시 연신내 길 안쪽에 있는 집 한채를 살 수 있었으까요."
박우철(박경림 아버지): "전 그 돈으로 장사도 하고 연탄 가게도 했는데, 몸이 불편해서 그런지 어영부영 밑천을 까먹고 말았어요."
이 와중에 박우철은 박경림 어머니(이혜선)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낳습니다(1남 3녀중 박경림이 막내).
박우철(박경림 아버지): "구파발에 그냥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살았어요. 부엌도 없는 집에 방하나만 덩그라니 있던 집인데, 이게 1978년에 헐려버렸어요. 그때가 제일 어렵던 시절이었죠."
박우철(박경림 아버지): "경림이가 어렸을 때는 살림이 없어서 양말도 신기지 않고 키웠어요. 그 어린 것에게 콩나무 50원어치를 사오라고 시키면, 양말도 안 신은 맨발로 시장을 다 뒤져서 콩나물 30원어치도 사오고, 50원어치도 사오고 했어요."
박우철은 결국 자영업을 접고 CBS(기독교 방송) 기능직 사원으로 15년동안 일하다가 IMF시절에 직업을 잃고 맙니다.
* 박경림이 고백하는 아버지의 과거
박우철(박경림 아버지): "당시 경림이가 고3이었는데, 혹시 스트레스 받거나 할까봐 도저히 실직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더군요. 그러다가 어느날 학교에서 수위 자리가 있다고 한번 와보라고 했어요. 월급은 전직장의 절반도 안되었지만, 그래도 제가 국가유공자여서 그런지 바로 취업이 되었죠."
(박경림 아버지 직업 고등학교 수위)
그런데 박경림은 집안의 경제적인 어려움만 겪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박경림: "아버지가 평소에는 자상하시지만, 술만 마시면 돌변해서 집안을 다 때려 부수셨다. 그래서 우리 온 집안 사람들이 공포에 시달렸고, 나 역시 어렸을 때는 아버지를 무척 원망하고 미워했다."
박경림: "그러다가 어느날 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아버지, 왜 그렇게 술을 드세요?"라고. 나는 "어린 것이 쓸데 없는 걸 물어본다."며 혼날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두려워서 그래, 무서워서..."라고."
박경림: "아버지는 전쟁터에서 전우들이 죽어나가던 참혹한 현실이 아직도 생생해서 그 두려움을 잊기 위하여 술을 마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그동안 내가 겪은 공포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경림이 아주 밝게 성장한 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네요.
나중에 박경림이 데뷔하게 되면서, 박우철은 스스로 술을 끊게 됩니다.
박우철(박경림 아버지): "내가 (아버지로서) 딸에게 도움은 못 돼도, 폐는 끼치지 않아야 하잖아요."
* 박경림의 재능 발휘
아무튼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성장하는 박경림이지만,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잘 파악하고 개발합니다.
박경림: "초등학교 5학년 때 소풍 가서 처음 MC를 봤어요. 그때부터 '진행 하는 사람(방송인 겸 MC)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죠. 전교생 앞에서 진행도 여러번 했는 데, 그때 우리 학생들이 저의 재밌는 얘기에는 막 웃고 재미없는 얘기에는 그저 그런 반응을 보였어요. 그런 점들이 참 매력적이었죠."
박경림: "제가 자란 은평구에서는 중학교때부터 나름 유명했어요. 고등학교 다닐 때는 옆 학교 사회까지 봤고요. 그리고 받은 돈으로는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 사먹고 했죠."
이렇게 본인의 재능을 잘 살린 박경림은 박수홍의 팬클럽 회장을 맡으며 박수홍과 인맥을 다지기도 하고, '별이 빛나는 밤에'에 일반인으로 출연해서 차츰 인지도를 올리게 됩니다.
1998년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에서 정식 게스트로 데뷔하게 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박경림의 재치있는 말재주로 인지도가 상당히 올라간 상태였죠.
* 박경림 목소리로 라디오에 발탁된 이유는?
또한, 박경림은 특유의 성실성으로 한꺼번에 라디오 대세 DJ가 되기도 합니다.
박경림: "무명 시절(막 데뷔한 다음)에 제가 라디오 진행을 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이 코웃음을 쳤어요. "네 목소리는 라디오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하셨죠."
실제로 박경림 목소리는 탁하고 갈라지기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나뉩니다(박경림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대세가 된 이유).
박경림: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마다 MBC 10층 도서관으로 갔어요. 그리고 저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PD실, 작가실을 찾아가서는 "오늘도 경림이는 10층에서 (라디오 진행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라고 제 존재를 알렸어요. 밤 10시에 PD, 작가분들에게 퇴근한다는 얘기하고 집으로 향했고요."
박경림: "그러다가 한 6개월 후에 엄청난 폭설로 수많은 연예인들이 지각을 하게 되었어요. 결국 몇개 프로그램에서 저를 급하게 대타로 썼고, 다음 라디오 개편때 고정 프로그램만 7개를 맡게 되었어요."
박경림의 경우를 보면, 2가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평소에 실력을 잘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
두번째는 본인의 실력을 발휘할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만약 박경림이 폭설 때 MBC 10층에 있지 않았고 또한 PD와 작가들이 그 사실을 몰랐다면, 아무리 실력이 좋은 박경림이라고 하더라도 라디오 프로그램을 저렇게 맡을 수는 없었을 것 같네요.
이후 박경림은 논스톱 등을 통하여 대세가 됩니다.
2001년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했는데, 정식 데뷔 이후 불과 3년만이었고, 또한 최연소 방송연예대상이었습니다.
(박경림 나이가 불과 23살때였음)
* 박경림의 유학 생활 이유
그런데 박경림은 인기 절정의 순간에서 돌연 유학을 선택해서는 미국에서 2년간 공부하게 됩니다.
(1년 동안은 어학 연수, 1년동안은 뉴욕 필름 아카데미 스쿨(New York Film Academy School of Film & Acting)에서 수료)
박경림: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방송인만 꿈꾸고 자랐기 때문에, 그것(방송일)만 알지 다양한 걸 보고 경험한 적이 없어요. 대학교 다닐 때도 연예계 활동을 하느라고 캠퍼스의 낭만이나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했고요."
박경림: "당시에 하루에 7~8개씩 스케줄이 있었지만, '그래도 떠나자' 라고 마음먹었어요. 사실 유학 갔다 오니까 '박경림이 예전 같지 않다, 내리막길이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제 마음에는 여유가 생겼어요."
박경림: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대중들이 나를 알아봐주니까, 제가 나름 기고만장해져서 스스로 되게 큰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무도 저를 모르죠. 실제로는 이 정도밖에 안 됐던 내가 그동안 기고만장하면서 살았구나, 라고 반성도 하게 되었어요. 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이었죠."
박경림: "유학 떠나기 전에는 '내가 빠지면 연예계가 좀 삐걱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불과 1주일만에 망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없다고 삐걱대기는 커녕, (연예계가) 더 잘 돌아가더군요."
박경림: "과거에는 방송을 7~8개씩 해도 감사함을 몰랐는데, (유학 이후에는) 하나만 해도 정말 감사해요. 유학 덕분에 이런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정상이었을 때 스스로 모든 것을 뿌리치고 떠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좀 더 알아보는 것은,
보통 용기로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네요.
박경림 신랑 박정훈 사진
* 박경림 남편 학력
이후 박경림은 2001년과 같은 전성기를 다시 회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여성 MC로 나름의 영역을 구축합니다.
사실 박경림이 2001년과 같은 전성기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2000년대의 유재석 강호동 2강 체제가 박경림까지 포함된 3강 체제가 되었을테니까요.
아무튼 박경림은 2006년에 KBS 맞선 프로그램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의 MC를 맡았다가 출연자 박정훈과 인연이 됩니다.
(나이는 박경림보다 1살 연하)
박경림 남편 박정훈 학력(학벌) - 고려대학교 재료공학부 졸업
박경림 남편 박정훈 직업 회사원 - 삼성SDS 근무
박경림 아들 사진
박경림 아들 사진
박경림: "프로그램 녹화가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남편이 저에게 명함을 건네주면서 자연스럽게 저의 연락처를 물어봤어요. 그리고 두달 뒤에 데이트 신청 전화가 왔고요."
박경림: "저 역시 남편에 대한 첫 느낌이 좋았어요. 녹화가 시작되고 처음 본 순간에 시원한 인상과 바른 청년이란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90점을 줬죠(웃음)."
박정훈: "많은 사람들이 경림이를 좋아하는 것처럼 저 역시 예전부터 팬이었어요. 그러다가 사귀면서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랑스러운 부분들을 하나씩 알아가게 됐죠. 사실 연예인 같지 않은 털털함이 경림이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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