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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임영근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뮤지컬배우 최정원은 한국 뮤지컬계의 선구적인 사람입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뮤지컬이라는 말 자체가 없을 때 시작한 사람이죠.

 

그녀의 그때 결심과 나중에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을 했을 때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재미있네요.

 

또한 스타와 열렬한 팬으로 만났던 최정원과 남편 임영근의 이야기와 최정원이 일부러 학벌을 속이는 부분(?)도 흥미롭습니다.

 

뮤지컬배우 최정원 남편 사진(가족 사진)

 

뮤지컬배우 최정원은 1969년 8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뮤지컬배우 최정원 고향). 올해 46살이죠(뮤지컬배우 최정원 나이).

(최정원 종교) 천주교

(최정원 학력 학벌) 영파여자고등학교

(최정원 프로필 및 경력) 1989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에서 6번 아가씨로 데뷔

 

이후 가스펠, 사랑은 비를 타고, 시카고, 갬블러, 지킬 앤 하이드, 맘마미아 등 수많은 뮤지컬 작품들의 주연을 맡습니다.

2007년에는 뽀뽀뽀의 뽀미 언니를 맡기도 합니다.

 

 

뮤지컬배우 최정원은 어릴 적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살 수도 있었습니다.

 

최정원: "어릴 적 "엄마, 나는 왜 다른 아이들보다 피부가 까매? 내 앞니는 왜 이렇게 튀어나왔어? 왜 영화배우처럼 예쁘지 않아?"라고 물었다. 그러면 어머니는 "너는 긴 다리와 쑥 빠진 몸매를 가졌잖아" 라며 용기를 주셨다."

 

최정원: "또한 어머니는 "정원아 너는 정말 예뻐. 그리고 웃으면 더 예뻐져."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때 이후로 항상 잘 웃게 된 것 같다."

 

최정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저는 친구들이나 선생님을 보면 항상 먼저 인사하면서 웃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도 저를 보면 웃어줬어요. ‘애들이 다 나를 좋아하고 선생님도 나를 좋아하네’ 이러면서 더 웃었죠. 웃을 때 잡히는 눈가의 주름이 저는 참 좋아요. 제 앞에 있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도 좋고요. 물론 제가 웃으니까 사람들도 저를 보면서 웃겠지만요. 가장 중요한 건, 제가 행복한 거예요."

 

 

확실히 최정원은 미모가 특출나지도 않고, 피부가 좀 검은 것도 사실입니다. 본인에게 이런 부분이 컴플렉스가 될 수도 있었는데, 어릴 적 어머니의 격려로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었네요.

어릴 적 부모의 격려와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 경우입니다.

 

최정원: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이 정말 맞는 거 같아요."

 

 

이처럼 성장하면서 최정원은 어머니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최정원: "어렸을 때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 저를 목욕탕에 데려가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안 보여서 찾아보면 동네 할머니들 등을 밀어주고 계시는 거예요. 어려서는 그게 참 싫었어요."

 

최정원: "그럼에도 어머니는 콧노래를 흥얼거릴 만큼 즐거워하셨어요.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이런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죠. 그러다가 내가 크고 보니 어머니를 닮아갔어요. 목욕탕에 있을 때 혼자 있는 분을 보면 젊은 아가씨라도 '등 밀어드릴까요' 하고 먼저 물어봐요."

 

최정원: "다른 사람의 등을 밀어주면 제 등을 민 것보다도 더 시원해져요. 엄마가 좋은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는 걸 나이 들어서 이제야 안 거죠. 함께 나눌 때 느끼는 행복이 혼자 느끼는 행복보다 커요."

 

최정원: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정원아, 비싼 옷은 깎더라도 시장에서 깎아달라는 말은 하지 말자. 어려운 사람에게는 많이 베푸는 사람이 되고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깎아도 된다'. 아파트에서 청소 용역을 하는 분을 보면 어머니는 가만히 놓아주지 않아요. 꼭 커피라도 타서 대접해야만 직성이 풀리셨죠."

 

이런 어머니를 보고 자랐기에, 최정원 역시 어머니를 닮아갈 수밖에 없었죠.

또한 최정원 어머니는 최정원의 재능을 일찍부터 간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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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제가 과거 어릴 적에 굉장히 활달했어요. 모창을 잘해서 동네 어른들로부터 예쁨을 받았고요. 당시 심수봉, 장은숙, 윤시내씨 모창을 정말 잘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노래하는 걸 무척 좋아했거든요. 노래 끝나면 어른들이 50원, 100원 동전을 쥐어주시곤 했는데, 그거보다는 박수에 민감했던 거 같아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나서야 노래를 했거든요."

 

최정원: "장기자랑 나가면 항상 1등을 했죠. 아이들이 밖에서 술래잡기하며 놀 때, 저는 집에서 거울 보면서 역할극을 하곤 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저를 9살 때 충무로에 있는 연기학원에 넣어주셨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청소년 대표로 연극제에 나가서 상도 받았어요."

 

최정원: "그러다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아버지가 그만 하라고 해서 연기는 접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오디션을 치르고 뮤지컬을 시작하게 됐죠."

 

이때가 바로 1987년 가을로 최정원이 고등학교 3학년때였습니다.

최정원이 롯데월드 예술극장 뮤지컬단 1기를 선발하는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을 한 거죠.

최정원: "고등학교를 그만두고서라도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고 싶었어요. 어린 시절 TV 주말의 명화에서 본 뮤지컬 영화 [싱잉 인더 레인]을 통해 뮤지컬을 처음 알게 됐고, 그 영화에서 사랑의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 것을 보며 한껏 매료됐거든요."

 

최정원: "그런데 담임 선생님께서 반대를 하셨어요. 어찌됐든 고등학교 졸업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셨거든요."

 

사실 최정원 담임의 말처럼 우리나라는 학력을 무척 중시하는 사회입니다. 게다가 대학교도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을 경우에는 더욱더 백안시당하기 쉽죠.

 

게다가 1987년에는 우리 사회에 아직 뮤지컬이라는 말이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을 때죠.

 

최정원: "내가 뮤지컬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관심을 받는 장르가 아니었어요. 주위에서 '정원아, 왜 뮤지컬이라는 걸 하려고 해?' 하는 반응이 대다수였죠. 그런 반응이 나올 때 내가 '뮤지컬이라는 게 뭐냐 하면, 내가 만든 거야'라고 장난을 쳐도 '아, 정원이 네가 만든 거구나' 하고 받아들일 정도로 뮤지컬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던 때였어요."

 

이때 최정원의 어머니는 최정원의 편을 들어줍니다.

 

최정원: "어머니가 제 뜻을 적극 지지해주셨어요. 오히려 학교에 찾아가 제가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선생님들을 설득하셨어요. 결국 선생님도 제가 졸업식에만은 참석하라고 하셨죠.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하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어요."

 

이때부터 우리나라에 뮤지컬이 태동되는데, 문제는 이들을 가르칠 선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강사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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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그때 저와 함께 뽑힌 사람이 남경주 오빠를 포함해 모두 10명이었고, 우리를 가르치는 분들은 외국인들이었어요. 1년 반 넘게 탭댄스-재즈-발레-노래는 물론 무대에서의 자세도 교육받았어요. 그때 외국인 강사들이 제게 붙여준 이름은 재키였고, 경주오빠는 토미로 불렸어요."

 

이후 오랫동안 최정원과 남경주는 뮤지컬에서 남녀주인공을 맡으며 인연을 다지게 됩니다. 하지만 둘은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죠.

 

최정원: "뮤지컬 배우로 첫 무대에 선 게 1989년 [아가씨와 건달들]이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남자에 대한 굳건한 고정관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분장실에서 남경주 오빠가 화장을 하고 눈썹에 마스카라까지 칠하는 모습을 보고 전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냅다 화장실로 내달릴 정도였죠. 그때부터 경주오빠를 비롯한 남자 배우들과는 연애감정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저 멋진 동료 배우로만 인식됐죠."

 

 

최정원도 처음에는 단역으로 시작합니다. '아가씨와 건달들'의 6번 아가씨였죠.

하지만 최정원은 남들이 다 돌아간 밤 12시까지 연습실에 혼자 남아 연습을 했고, 그녀의 실력은 곧 두각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리고 두번째 작품만에 기회를 잡게 되죠.

 

 

최정원: "뮤지컬을 처음 할 때 덤블링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쉽지 않았어요. 이후 2~3년 동안 수영장에서 잠수훈련만 했어요. 호흡을 늘이려고요. 덕분에 100m 거리를 잠수로만 오갈 수 있을 정도가 됐어요. 또 100번 부른 노래와 1,000번 부른 노래는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전 배우로 입문한 후 저 자신을 채찍질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고 자부해요."

 

최정원: "‘아가씨와 건달들’ 이후 ‘가스펠’에 코러스로 캐스팅됐는데 주인공 역이 멋있어 보여 대사를 다 외우고 주연배우의 말투까지 따라 연습했어요. 그런데 마침 주연으로 캐스팅됐던 선배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제게 기회가 오더군요. 노력하면 분명히 꿈이 이뤄진다고 믿어요. 설령 이뤄지지 않더라도 그 꿈을 위해 노력한 결과는 제 안에 남게 되죠.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그 내용이 시험에 안 나왔다고 해서 공부한 게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이렇게 뮤지컬계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던 최정원에게도 사랑이 찾아옵니다.

바로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던 임영근(이름)이었죠.

 

당시 최정원 남편 임영근의 직업은 MBC PD였습니다(뮤지컬배우 최정원 남편 직업, 나이는 최정원과 동갑). 

우연히 최정원의 뮤지컬을 본 임영근은 3년 동안 짝사랑에 빠져 매공연을 빼놓지 않고 찾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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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최정원 남편 임영근 사진

 

최정원: "남편이 3년 동안 항상 공연 첫날엔 꽃다발을, 공연 마지막날에는 선물을 주었어요. 처음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 '이번엔 그가 내게 어떤 선물을 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깜짝 놀라곤 했죠. 그렇게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연애하는 동안 최정원은 임영근의 배려에 깊이 빠집니다.

최정원: "남편은 영화 티켓을 끊어도 3장씩 끊었어요. 제가 옆사람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불편해할까봐 그런거죠. 결혼 이후에는 눈이 오면, 제 차를 아파트 현관 앞까지 대놓고 출근해요. 행여 제가 눈을 맞을까봐 염려해서에요."

 

 

이렇게 최정원은 남편 임영근의 적극적인 지지속에 결혼 후에도 뮤지컬 배우로 계속 활동하게 됩니다.

둘은 1998년 결혼식을 올렸고, 둘 사이에는 딸 임수아가 있습니다.

(최정원 배우자 임영근)(최정원 자녀 자식)(최정원 가족 관계)

 

뮤지컬배우 최정원 딸 임수아 사진

 

최정원: "남편과 동갑내기인데 동갑이라는 생각이 안들어요. 제가 무슨 일이 있어 속상해하면 ‘내가 다 해결해 줄게’하며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피곤해하면 팔과 다리를 안마해주고 물 한 잔이라도 직접 가져다줄 정도로 자상한 남자예요. 그런데 알고보니 저희 시어머님이 지금까지 쓰레기를 직접 버리신 적이 없대요. 시아버님이 어머니께 잘 하는 걸 보고 남편도 배운 거죠."

 

최정원: "사실 남편도 좋은데, 저는 시부모님이 더 좋아요. 결혼할 때 그 사람의 부모를 먼저 보라고 하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친정어머니조차 사돈에게 배울 게 많다고 하실 정도예요. 지금 제 친정어머니가 수아를 봐주시거든요. 시어머니께서는 밑반찬부터 국거리까지 모든 음식을 늘 해서 보내주세요. 친정어머니는 아이 보느라 바쁘시니까 음식 같은 건 못하시게 하라고 하면서요."

 

 

최정원을 알기 위해서는 딸 임수아의 수중분만과 남편의 사회적인 성공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남편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죠.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임영근의 원래 직업은 MBC PD였지만, 이후 MBC를 퇴사한 후 영화와 뮤지컬 제작 사업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뮤지컬 '렌트'(2000) '시카고'(2001) 초연을 성공시켰고, 영화-공연 투자사인 코리아픽처스에서 일하면서 영화 '친구'의 투자를 주도합니다.

 

한국 뮤지컬 시장 성장의 결정적인 계기였던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에서는 최대 주주로 직접 투자에 참여하고, 이후 국내 공연계 역사상 최초로 30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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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임영근은 창작 뮤지컬쪽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임영근: "2000년 대 초반까지 라이선스 뮤지컬 대부분에 제 손을 거쳐 들어왔다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이게…, 점점 허무해지는 거예요. 열심히 벌어봤자 수익의 상당부분은 외국으로 가버리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더라구요. 하려면 창작 뮤지컬을 해야겠구나 생각했죠."

 

임영근: "결국 문제는 음악이잖아요. 실력있는 배우들은 충분하고, 무대 메카니즘도 괜찮은데 좋은 음악이 없으니 킬러콘텐츠가 나오지 못한다 이거죠. 음악이 해결되지 않으면 뮤지컬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당연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임영근은 2006년 고 이영훈 작곡가를 만나서 함께 '광화문연가'를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최정원: "대중적으로 친숙한 노래들이라 강점이 있었죠. 또 단일 작곡가의 작품이 50곡 이상 히트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에요. 저작권 해결하기가 굉장히 쉬웠습니다."

 

임영근은 광화문연가를 성공시키고, 이후 수원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로 후배를 양성하게 됩니다(뮤지컬배우 최정원 남편 직업 뮤지컬 제작자 겸 대학 교수).

 

 

최정원 남편외에 최정원이 딸을 낳을 때의 수중분만 역시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롭습니다. 최정원은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녀는 어떻게 수중분만을 알게 되었으며, 이것이 그녀의 연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는 제왕절개에 의한 출산이 거의 50%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자연 분만이 어려우면 무조건 제왕절개를 할 정도였죠.

 

최정원: "1998년에 ‘도전 지구 탐험대’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대부분 출연자들이 오지를 가는데, 저에게는 뉴욕에서 재즈댄스를 배워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더라고요. 세상에! 뉴욕을 간다는데! 그렇게 브로드웨이 재즈댄스 스쿨에서 한 달 과정을 1주일 만에 마스터하는 도전을 한 거죠."

 

최정원: "거기서 ‘캣츠’에 나왔던 한 배우를 만났는데, 6개월 된 아이가 있음에도 전혀 아이 낳은 사람 같지가 않은 거예요. 어쩜 몸매가 그럴 수 있느냐고 했더니 수중분만을 했대요. 그때 막연히 ‘나도 아이를 가지면 수중분만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제가 임신했을 때 SBS에서 2000년 첫 방송될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며 출연 제의를 해왔어요."

 

수중분만은 산모의 노력외에도 배우자의 협조도 크게 필요함

 

결국 최정원은 1999년 9월 21일 수중분만으로 딸 임수아를 출산합니다.

 

최정원: "수아(최정원 딸 이름)는 일단 울지 않고 태어났어요. 낳자마자 탯줄이 달린 채로 양수 온도와 똑같은 물에서 수영을 하면서 저를 바라봤어요. 탯줄을 자를 때서야 ‘응애’ 하고 울음을 터뜨렸죠. 아이가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젖을 물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어요."

 

최정원: "당시에 병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아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엄마만 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장하다 내 딸”이라며 저를 아이 다루듯이 어루만져주셨죠. 아마 저도 나중에 그렇겠죠? ‘내 딸이 여자가 됐구나’ 하고 안아주겠죠?"

 

최정원의 출산 장면은 SBS에서 밀레니엄 특집 다큐멘터리로 2000년 1월 8일 방송을 합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고, 제왕절개로 대변되던 출산 문화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을 도운 최정원이지만, 그녀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위기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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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수중분만 방송 나가고 나서 몇몇 동료들이 저에게 “배우로서의 인생은 끝났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배우는 여러 가지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아기를 낳은 여자라는 걸 공개적으로 알렸기 때문에 한계가 생겼다고요. 잠시 내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헷갈리기도 했어요."

 

최정원: "출산 다음 작품으로 ‘라보엠’의 미미 역할을 맡았는데, “아이 낳은 여자가 어떻게 열아홉 살 역할을 해?”라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공연 이후 상황은 역전됐죠. “아이 낳은 여자가 저렇게 뛰어? 체력이 저렇게 돼? 아니 배에 왕(王)자가 있잖아?” 이런 평을 들었으니까요."

 

딸을 출산한 다음에 최정원은 둘째를 포기하고 맙니다.

최정원: "수아가 한 살 때 모유를 미리 짜놨다가 우유병에 넣어서 먹이곤 했는데, 한번은 모유가 뭉친 줄도 모르고 그냥 먹였다가 기도가 막혀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이런 충격적인 일을 겪은 후 아기를 낳고 엄마가 직접 돌보지 않는 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어 출산계획은 더 세우지 않았죠."

 

 

최정원 프로필에 고졸이라고 적었지만, 사실 최정원은 대학 졸업자입니다.

의도적으로 자신의 프로필을 수정하지 않고 있죠.

 

최정원: "저는 한 번도 대학 나오지 않은 거에 대해 후회해본 적도 없고, 대학 나온 사람을 부러워한 적도 없어요. 제가 일하는 분야가 학력에 의해 평가받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거예요."

 

최정원: "나중에 제가 공부하기를 원할 때 대학에 진학을 했어요(서울예대 전문심화과정). 공부는 자신이 원할 때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그보다 먼저 학벌이 아닌 실력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겠지만요."

 

결국 최정원은 2011년에 대학을 졸업합니다. 

 

최정원: "제 매니저는 제가 서울예대 졸업한 것을 알리지 않길 바라요. “고등학교 졸업하고서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된 정원씨를 바라보면서 열심히 사는 분들을 위해 그랬으면 한다”라고요. 제가 학위를 딴 건 단지 공부가 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에 굳이 각종 프로필의 최종학력을 바꾸지 않았어요. 제 홈페이지에도 영파여고로 나와 있어요."

 

최정원과 최정원 매니저는 학벌 사회를 타파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자그마한 노력을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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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은 좀 평범하지 않은 연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정원: "배우가 노래와 춤, 연기를 잘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기부하려 노력하는 마음가짐은 좋은 배우가 되는 지름길이다. 뮤지컬 배우가 되어 제일 먼저 한 것이 나쁜 음식과 습관을 버린 일이다. 

 

최정원: "누군가는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심지어는 콜라도 안마시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런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 목소리가 좋아지고 호흡이 길어지고 건강해졌다. 햄버거를 먹으면서도 우유를 마신다. 탄산음료를 마시면 무대에서 트림을 하기 쉽다. 또 선행과 기부를 많이 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 게 공연을 위해서 굉장히 중요하다."

 

술과 담배, 심지어 콜라까지도 피하는 것은 종종 연기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모두 몸과 성대에 해로운 것들이니까요.

그런데 최정원은 거기에 한발 더 나아가 '착한 마음'을 연기에 대한 결정적인 요소로 생각합니다. 아마 그녀가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운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최정원의 생활 리듬은 일반인들과 다릅니다. 대부분이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최정원의 경우는 주중에는 연습을 하고, 주말에는 직접 공연을 하게 되죠.

보통 이렇게 가족과 소홀히 지내게 되면 이혼을 하기 마련이죠.

 

최정원: "남편이 예전에 [토요일 밤의 열기] 공연 첫날엔 제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띄웠어요. '당신은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될 생각을 버리시오. 당신이 늘 좋은 배우라는 명칭이 따라붙는 사람이길 바라오'라고요."

 

최정원: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자주 여행을 가는데 얼마 전에는 일본에 다녀왔어요. 수아가 ‘이웃집 토토로’같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를 좋아해서 일본에 관심이 많거든요. 여행을 다녀와서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일본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최정원: "언젠가 어린이집에서 발표회가 있어서 갔는데, 수아의 친구들이 저를 보고는 '수아엄마다' 하니까, 수아가 '아니야. 뮤지컬배우 최정원이야' 하는 거예요. 늘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앞섰는데, 제 딸이 절 자랑스러워하는구나 싶어 가슴이 찡했어요."

 

사실 위의 이유로 최정원은 한때 이혼설에 휘말리기도 합니다(뮤지컬배우 최정원 이혼 루머).

최정원: "예전에는 남편이나 딸 수아랑 같이 방송 출연을 했었는데 요즘 저 혼자 방송에 나오니까 이혼설이 돌더라. 저는 웃고 말았지만 주변에서 '정말 사이가 안 좋냐'고 물어보기도 한다."

 

최정원: "남편 제자들이 닭살커플이라고 놀린다더라.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더 쑥스러워하고 방송 출연을 꺼린다."

 

 

좋은 배우 최정원의 뒤에는 남편 임영근의 적극적인 지지와 딸 임수아의 배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가족들의 지지와 사랑이 최정원이라는 배우의 에너지 원천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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