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 나이 부인(아내) 자녀 입양 쎄시봉
이번 시간에는 시대를 앞서간 곡들로 한국 가요사에 굵은 획은 그은 천재로 가왕으로 불리는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송창식에 대한 포스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송창식은 인천광역식 출생, 1947년 2월 22일생으로 73세이며 학력은 인천신흥초등학교, 인천중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서류상)했습니다.
가족관계로는 아내 한성숙 씨가 있으며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첫째 아들 송결 씨는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났으며 딸 송빛터 씨와 송무늬 씨는 입양을 해 한 가족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송창식은 시적인 감수성을 담아낸 품격 있는 가사와 함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작곡가로 대부분의 곡들이 송창식의 작사, 작곡인 노래들입니다. 그는 뛰어난 가창력을 가진 가수이자 예술가로 불리고 있습니다.
송창식은 1967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를 결성해 1968년 ‘트윈폴리오 1집’ 앨범 ‘하얀 손수건’이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1969년 영화 ‘푸른 사과’의 조연으로 영화배우 데뷔도 했으며 1970년에는 솔로로 전향하여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가수 송창식 쎄시봉 카페에서 활동 ☆ 송창식은 세시봉 카페에 활동하게 되었는데요. 그전에는 2년 동안 서울역 바깥에서 잠을 자거나 건설 노동자들이 자는 곳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노숙자와 같이 생활하면서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다 쎄시봉에서 ‘노래하는 친구들을 모아 그룹을 결성해 이곳에서 공연을 해주면 매일 밥을 제공해 주겠다’라는 말에 세시봉이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당시 송창식을 데려간 사람이 이상벽이었으며 송창식은 그 이후로 생활과 노래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
이후 윤형주, 이장희, 김세환, 김민기, 양희은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창식은 1974년에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곡으로 대중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75년 ‘한 번쯤’, ‘고래사냥’, ‘왜 불러’ 라는 곡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어 가요 부문의 여러 가지 상을 받으면서 한동안 가요계를 장악했다고 합니다.
1980년에는 가나다라로 가요에 국악을 접목하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시작 1986년 발표된 ‘참새의 하루’와 ‘담배가게 아가씨’를 더블 타이틀로 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송창식의 불우한 어린 시절 ☆
송창식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으며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전사, 어머니도 행방불명된 뒤 조부모 슬하에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송창식은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남달라 8~9살 때 곡을 쓸 줄 알게 되면서 주변으로부터 `모차르트`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는 "사람들이 모차르트라고 했다. 나는 모차르트가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그래서 내가 모차르트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모차르트가 누군지 알고 나니까 엄청난 사람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중3 때는 경기음악콩쿠르 성악 부문 1등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이후 서울예술고등학교 성악과에 수석입학을 하게 되었지만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당시 형편이 좋지 않았던 송창식은 군경 유자녀 장학금과 심부름 아르바이트로 학업을 겨우 이어가긴 했으나 가난으로 실기시험을 치르지 못해 결국 유급 통지서를 받아 1년을 다닌 후 중퇴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송창식이 다니던 서울예고 동창으로는 지휘자 금난새가 있으며, 금난새가 말하길 "음악에 정말 천재였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가난해서 매일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 친구가 바로 송창식이었다고 합니다.
송창식 결혼 ☆
송창식은 1977년 아내 한성숙 씨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쌍둥이였던 아내 한성숙 씨는 언니는 무용과, 아내는 미술과 , 송창식은 성악과로 동기였다고 합니다.
졸업 이후 송창식이 1975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연을 하는데 아내 한성숙씨의 언니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송창식은 쌍둥이 동생의 안부를 물었고, 언니는 동생이 미국에서 스튜어디스를 그만두고, 이태원에서 골동품 판매업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찾아가 만나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송창식 아내 한성숙 씨는 우석대학교에 진학 간호학을 전공했으며 대학 시절에 메이퀸을 하기도 했고, 미국 정보부 스튜어디스 출신으로 영국 왕실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고 하는데요.
그 사실을 안 송창식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음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는군요.
그러던 중 아내 한성숙 씨가 송창식에게 미8군 파티 때 함께 갈 파트너를 소개해달라고 해 당시 성공한 사업가를 소개시켜 주려고 했지만 약속이 취소되면서 송창식이 파트너로 참석하게 되면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창식은 2019년 ‘인생 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여 아내 한성숙 씨와 20년째 떨어져 지낸다고 밝혔는데요.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사업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이어 2남 1녀의 자녀들 중 두 명의 자녀를 입양하게 된 배경도 밝혔는데요. 아내인 한성숙씨의 쌍둥이 언니가 첫째 딸의 경우는 난임인 처형이 아기를 갖고 싶어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을 추진했다가 관련 법규가 바뀌면서 무산되게 되어 송창식 부부가 입양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째 아들은 언니가 미국에서 인공수정해 아이를 낳았지만 미국에서는 엄마가 아이를 못 기르면 빼앗긴다고 해 처형의 아이를 입양하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송창식의 큰 아들 송결씨는 엔씨소프트 게임 기획자로 알려져 있으며 2006년에 부인과 결혼 슬하에 딸이 있다고 합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음악적인 천재성으로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노래에 자부심이 상당한 조영남도 송창식의 노래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970년대 한국 가요사에 남을 위대한 가수로 불리는, 당대 최고의 음악인들과 함께 영화와 같은 삶을 살아온 가수 송창식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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