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이현숙 러브스토리와 인생이야기
김세환은 오랫동안 인기 가수 생활을 했지만, 별다른 잡음없이 평탄한 삶을 삽니다.
욕심없는 그의 성격때문인데, 그의 아내 이현숙 역시 이를 지적한 바가 있죠.
김세환의 가정 생활을 통하여,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가 올바른 부모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김세환은 1948년 7월 15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김세환 고향). 올해 67살이죠(김세환 나이).
(김세환 종교) 개신교
(김세환 학력 학벌)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김세환 프로필 및 경력) 1972년 가요계 데뷔
주로 포크팝 노래를 부릅니다. 히트곡으로 "사랑하는 마음", "화가 났을까", "비", "옛 친구", "잊지 못할 추억", "목장길 따라" 등이 있습니다.
김세환 아버지가 바로 유명한 연극배우인 김동원입니다(김세환 아버지 직업).
그래서 김세환은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성장하게 되죠.
김세환: "집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큰 전축이 있었는데, 댄스파티가 열리면 부모님이 먼저 시범으로 춤을 보여주시고는 편하게 놀라며 자리를 피해주셨어요. 음악과 춤, 자유와 낭만이 살아 있는 환경에서 지금 생각해도 참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죠."
김세환 아버지나 어머니(이름 홍순지, 여고 시절 성가대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으며 전업주부)가 음악을 알았고, 또 아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배려까지 했네요.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아버지가 많았던 60, 70년대에는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김세환: "기타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대천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한 대학생이 기타로 팝송을 연주하자 여학생들이 선망의 눈빛으로 몰려드는 장면을 보고 결심했어요."
김세환: "집에 온 날부터 어머니께 기타를 가르쳐달라고 졸랐더니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기타를 사주셨어요. 그 뒤부터 밤낮없이 기타치며 노래를 불렀죠."
김세환 역시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어서 기타를 시작했네요. 어렸을 때부터 여자에게 관심이 많았는데, 나중에 가정을 이룬 후에 그는 배우자에게 충실합니다. 왜 그럴까요?
김세환: "어려서부터 행복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저도 꼭 우리 부모님 같은 가정을 이루고 싶었어요. 저는 평생 단 한 번도 두 분이 큰 소리 내며 다투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 아버지는 밖에 나가면 최고의 배우셨지만 집에서는 직접 화초를 다듬고, 눈비 오면 당신이 다 치울 만큼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죠."
김세환은 행복한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자신 역시 그렇게 살고 싶어합니다. 인기 가수였기에 수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접근했겠지만, 그가 가정에 충실했던 이유가 있었네요.
김세환 젊은시절 과거 사진
김세환: "노래가 좋아서 불렀을 뿐,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인 69년 TBC에서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을 연다기에 친구들과 함께 밥 딜런의 노래를 들고 참가했다가 이름이 알려지게 됐죠. 본선에서 탈락하기는 했지만 그 사건으로 학교 안에서는 ‘노래 좀 하는 아이’로 소문이 났거든요. 그때부터 각종 교내행사에 불려다니며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이때 김세환은 윤형주를 만나서 듀엣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
김세환: "두 사람이 함께 ‘별밤’에 나가서 비지스의 ‘돈 포겟 투 리멤버(Don’t forget to remember)’를 불렀어요. 그때만 해도 그냥 한 번의 방송 출연 정도였죠.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방송국에 ‘진짜 돈 포겟 투 리멤버 말고, 김세환과 윤형주가 부른 그 노래를 들려달라’는 엽서가 쏟아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저 ‘노래 좀 하는 학생’이던 제가 순식간에 가수가 된 거예요."
이후 김세환은 1974년 MBC 10대 가수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가수왕, 75년 TBC 방송가요대상 가수왕을 수상하면서 인기 절정의 가수가 됩니다.
그런데 시작은 정말 우연치 않은 계기였네요.
김세환 젊었을때 사진
김세환: "저처럼 고생 없이 큰 가수는 아마 가요사에 없을 거예요. 그저 좋아서 부른 노래로 과분할 만큼 큰 사랑을 받았죠. 저는 다른 가수들처럼 직접 작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 덕을 많이 봤어요. 송창식씨가 만들어준 ‘사랑하는 마음’, 윤형주씨의 ‘길가에 앉아서’, 이장희씨의 ‘좋은 걸 어떡해’ 등이 연이어 히트를 했거든요."
인기 절정이었던 1978년 김세환은 아내 이현숙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현숙은 김세환보다 7살 연하였죠(김세환 부인 이현숙 나이차이, 김세환 배우자).
김세환 부부는 아들 김기범과 딸 김도연을 낳습니다(김세환 자녀 자식).
이후 김세환 아들 김기범은 미국 유학 등을 했고, 김세환 딸 김도연은 중앙대에서 바순을 전공합니다.
김세환: "결혼 한 달 후 묵직한 소포를 받았어요. 내 LP판을 다 부숴서 보냈더군요."
아마 김세환의 팬이 김세환의 결혼에 실망을 해서 이런 행동을 한 것 같네요.
김세환 가족 사진
김세환은 세시봉중에서도 조영남과 특별히 대비됩니다.
조영남은 두번의 결혼과 이혼, 재혼 그리고 무수히 많은 설화를 낳은 반면에, 김세환은 항상 '싱글벙글 웃는' 이미지로 팬들에게 편안한 웃음만을 주었죠.
조영남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두둔할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인 사회 양식에서는 한참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만 조영남에게 그 사랑이란 너무나 짧고 자기 위주여서 문제인 것 같네요.
아무튼 이렇게 보면 김세환이 무척 조용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에게 육체적인 에너지가 없어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지 못했던 걸까요?
사실 그는 아주 활동적인 사람이죠.
실제로 고등학교 2학년때 경찰 기마대에서 승마 강습을 받았고, 젊은 시절에는 오토바이 경주를 즐겼을 정도로 스포츠맨이었습니다. 또한 1986년에는 미국에서 막 시작된 산악자전거(MTB)에 한동안 빠지기도 했죠.
김세환: "미국에서 산악자전거가 활성화된 게 80년대 초반이니,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거의 처음으로 산악자전거를 탔다고 할 수 있어요. 정직하게 땀을 흘리는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그때부터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죠. 자전거를 타고 청계산을 오르내리고, 강원도 속초까지 다녀오기도 해요. 태백산맥의 대관령과 미시령을 1시간이면 올라간다는 걸 믿으시겠어요?"
굉장히 활동적이네요. 육체적인 에너지도 무척 많았는데, 다만 조영남처럼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죠.
김세환: "저희 부모님의 삶의 철학이 ‘자유롭고 편하게 살자’였어요. 저는 제 삶을 통해 아이들에게 그 정신을 전해주고 싶어요. 큰 계획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생하기보다는, 다양한 취미를 즐기며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마음껏 누리라고요."
부모님의 삶의 철학이 김세환을 거쳐 아이들까지 전달된다라...
참 훌륭한 집안같습니다. 이런 집안을 명문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네요.
김세환: "간혹 아내가 ‘당신은 너무 야망이 없어’라고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제가 그러죠. ‘그래, 없어. 하지만 그래서 행복하잖아’라고요."
어릴 적 부모님의 다툼을 보고 자란 아이는 나중에 자신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그 결심이 성공한 아이도 있지만, 많은 수는 자신도 모르게 부모의 나쁜 모습을 닮게 되죠.
하지만 부모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자란 아이, 또 그것을 부러워하던 아이의 대부분은 부모처럼 살게 됩니다.
김세환에게도 육체적인 에너지가 많았지만 그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데 집중합니다. 김세환의 욕심은 '행복한 가정'이었고, 마침내 그것을 성취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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