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영호는 복싱 싸움실력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김영호 스스로 조직폭력배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을 정도로, 대단한 싸움실력이었죠.
김영호가 과거 왜 방황했는지, 그리고 김영호가 어떻게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네요.
# 목차
* 김영호 싸움실력이 대단한 이유
* 김영호 노래모음 4곡
* 김영호 어린 시절 방황하면서
* 김영호 군대 에피소드
* 김영호 방황했던 이유
* 김영호가 뮤지컬을 시작하게 된 계기
탤런트 겸 영화배우 김영호(본명)는 1967년 5월 24일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납니다(김영호 고향 충청도 충주). 올해 49살이죠(김영호 나이).
(김영호 키 몸무게) 183cm, 83kg
(김영호 학력 학벌) 주덕초등학교, 주덕중학교, 충주공업고등학교 졸업, 청주대학교 산업공학과 학사
(김영호 프로필 및 경력) 1999년 영화 '태양은 없다'로 데뷔
1988년부터 청주에서 언더그라운드 록그룹에서 보컬로 활동합니다(가수 김영호. 당시 예명은 한반도)
그러다가 1994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명성황후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하였고, 2003년 드라마 야인시대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널리 알리게 됩니다.
그외에 영화 태양은 없다, 달마야 놀자, 미인도, 완벽한 파트너, 고백 등과 드라마 장길산, 서동요, 소금인형, 못말리는 결혼, 인수대비, 몬스타, 기황후 등에 출연합니다.
배우 김영호 사진
* 김영호 싸움실력이 대단한 이유
김영호는 어릴 때부터 넉넉하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김영호: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나를) 키우셨다. 다른 집안 친척들 역시 부유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김영호는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을 보였습니다.
태권도도 할 줄 알고, 권투는 고등학교때 전문적으로 배웠죠(김영호 권투).
김영호: "당시 목표가 세계 챔피언이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뭐를 해도 일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찍부터 (그런 생존 경쟁에) 눈을 뜬 것 같다."(김영호 싸움실력)
그런데 김영호는 복싱 실력을 잘못된 곳에 사용하게 됩니다(배우 김영호 복싱 태권도까지).
김영호: "철없던 시절 많이 때리고, 또 맞고 다녔다. 한번은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결국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사찰에 들어가 스님이 되려고 했었다."
(김영호 싸움실력이 대단한 이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 김영호는 격투기에도 일가견을 가지게 됨)
김영호가 스님이 되려고 했던 시기는 거의 30살 때였는데,
그 전에 김영호의 20대에 대해서 좀 더 알 필요가 있습니다.
* 김영호 노래모음 4곡
김영호 (Kim Yeong Ho) [배우] 김영호 그녀를 사랑해줘요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King of Mask Singer 17]
김영호 잃어버린 사랑
김영호 (Kim Young Ho) 김영호 그대를 보낸다 (I Let You Go) (feat. 김태원 of 부활) MV
김영호(feat 부활 김태원) 김영호 사랑할수록
* 김영호 어린 시절 방황하면서
김영호는 어릴 때부터 노래와, 글쓰기, 시짓기 등의 여러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김영호: "어릴적엔 열정이 가득했다. (내 안의) 뭔가 표현을 하고 싶은데 그게 반항이면 안되잖나. 사실 내가 신체도 크고 복싱을 하다 보니까, 소위 말하는 안 좋은 길(조직 폭력배 등)로 갈 수 있겠구나라는 염려가 되기도 했다."
김영호: "그러다가 학교 가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내가 노래를 할 줄 아나보다'라고 느꼈다."
김영호: "가수 활동은 21살부터 한 것 같다. 그 당시에 콘서트는 한 100번 정도? 거리공연을 7년이나 했다. 거리 공연은 소년소녀 가장 돕기 일환으로 한건데, 나중에 가두 모음으로 학교에 (모금액을) 전달했다."
김영호 과거 사진
사실 김영호는 강변가요제에도 출전한 실력자였습니다(1990년 김영호 노래 '눈먼 사랑'으로 본선 진출).
김영호: "강변가요제뿐만 아니라 대학가요제, 신인가요제에도 모두 출전했다. 다만 본선까지는 다 진출했는데, TV에 나오는 결선에는 나가지 못했다."
이렇게 김영호는 가수 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그의 이십대는 무척 거친 삶이었습니다.
김영호가 어느 정도로 철이 없었는지(?)는 다음 에피소드를 보면 잘 알 수 있죠.
* 김영호 군대 에피소드
김영호: "군대에 입대했을 때였다. 나는 당시 남자는 남자 군인에게만 인사하고 여자는 여자 군인에게만 인사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훈련소때 여군 장교 2명을 만나서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갔다."
김영호: "그러자 여군(대위)가 "거기 서!"라며 나를 불러세웠다. 여군 장교가 왜 인사를 하지 않냐라고 묻자, "나는 남자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김영호: "결국 화가 난 여군 장교가 나를 때리려 팔을 올렸고, 나는 그 팔을 잡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알았어요, 죄송해요."라고 건성으로 사과를 한 다음에 내 갈길을 갔다."
이 당시의 김영호는 일명 '다나까' 말투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훈련병이었네요.
김영호: "그런데 갑자기 여군의 속옷 색깔이 궁금해졌다. 그들도 남자들처럼 국방색인지 알고 싶어서, 뒤돌아서 "여군 브래지어와 팬티도 국방색이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여군 대위가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헌병대를 부르더라."
김영호가 철이 없음과 동시에, 얼마나 담대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김영호 방황했던 이유
김영호: "20대의 나는 말이 없고 외곬인데다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글을 쓰거나 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김영호는 혈기가 넘치면서도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그의 무의식에 있는 '생에 대한 불안' 때문이 아니었나 합니다.
김영호: "20대때 저의 가장 큰 불안은 제가 일찍 죽을 거라는 생각이었어요. 당시에는 왠지 제가 일찍 죽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사실 아버지도 그랬고 삼촌도 그렇고... 저희 집안에 단명한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김영호: "그리고 사람에게 실망을 느끼거나 삶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면 노래를 불렀어요. 노래안에 삶이 있고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또 노래는 정직해요."
김영호: "제가 노래를 아주 많이 부를 때는 하루 18시간 노래하기도 했어요. 노래가 너무나 좋아서 노래로 득도를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창을 하는 사람처럼 산 속에 들어가 노래를 불렀죠."
김영호는 일찍부터 사람에 대한 덧없음을 터득한 것 같네요.
하지만 김영호는 곧 자기 인생의 궤도를 수정하게 됩니다.
김영호: "우연히 어떤 연극의 음악감독 겸 세션을 맡았어요. 그러다 극중 한 역할을 맡게 됐어요. 그렇게 연극을 시작했는데, 연극이 재밌더라고요. 결국 그 이후에 극단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게 되었죠."
* 김영호가 뮤지컬을 시작하게 된 계기
이렇게 김영호는 언더그라운드 가수 생활을 하다가 연극을 우연히 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뜻에 따라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시작하게 되었죠.
김영호: "10년 동안 대책 없이 노래만 부르고 다니니까 돈이 없었어요. 하루는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내가 내가 널 참 잘 키웠다고 생각하는데, 분명히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다. 그런데 네가 가는 길을 막으면 네가 참 속상할 거고 집안을 생각하면 내가 속상하다"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생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어요."
김영호: "결국 어머니도 좋아하시도 저도 만족할 만한 일을 찾게 되었어요. 그게 바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뮤지컬이었죠. 연기를 하면서 노래 부를 때 정말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영호는 강변가요제 등에 본선에 올랐고, 또한 십년 정도 언더그라운드에서 노래를 불렀던 실력자였기에, 뮤지컬 무대에 별 어려움없이 적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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